▶summon
무려 총 7권에 이르는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장편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a la recherche du temps perdu)"의 과거를 향한 대서사는 정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사소할 만한 대상인 마들렌느로 시작된다. 마들렌느가 화자에게 어린 시절의 기억을 소환시킨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마들렌느의 비주얼이 아니라 차에 적신 마들렌의 맛이 그의 잊혀졌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자극했다. 소설의 주인공은 우연히 차에 적신 마들렌느를 한 입 물었을 때 전율을 느끼고 어리둥절하다가 어린 시절 이모가 차에 적셔준 마들렌느를 맛본 기억때문이라는 것을 자각한다. 프루스트는 심리학과는 무관한 문학가였지만, 이 소설을 통해 그는 "비자발적 기억(involuntary memory)"을 소설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공을 인정받았다.
"비자발적 기억"이라는 단어는 참 딱딱한 심리학에서 쓸 법한 단어로 평소에 들거나 쓸 일도 없어 보이지만, 사실 이 어색한 표현이 우리 일상 생활에 "추억 소환"이라는 말로 자리 잡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비자발적"이라는 단어만큼 딱딱한 단어가 "소환"이다. 사실 "비자발적"이라는 단어가 "심리학"에서나 어울린다면 "소환"은 그 태생이 법률용어라고 할 수 있다. 사소한 분쟁으로 법원에 가보거나 판결문이라도 한번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법률 용어는 일반 사람들에게 그냥 어렵다라는 느낌이기 전에 생소한 느낌이 먼저 다가온다. 법조계 내외에서 일반인에게 친숙한 용어와 표현으로 정화하자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어떻게 보면 언어는 계층이나 신분의 표현이자 권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법률 용어가 생경하고 어려운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니다. 그것은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에도 투툼한 법률 용어 사전이 따로 있는 것이 우연은 아니다.
한자도 획수도 많아 어렵게 보이는 "소환(召喚)"은 "부를 소"에 "부를 환"이라는 한자어가 결합한 단어로 결국 "불러들이다"라는 뜻이니 개념은 사실상 단순한 것이다. 이렇게 딱딱하고 어려운 "소환"이라는 법률 용어가 법조계 내의 자정을 통해 쉬운 단어로 바뀌는 대신에 우리 일상으로 침투해 최근에는 오히려 일반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친숙한 단어로 거듭났다. 그 대표적인 예가 "추억 소환"이다. 이전 같으면 "추억"이나 "기억"은 "상기"하거나 "불러오는" 것이었으나, 이제는 "소환"의 대상이 되었다.
요즘 언론에서 자주 나오는 "소환"은 "검찰 소환"이나 "법정 소환"이 많이 등장하면서 우리에게 친숙한 용어가 되었다. 정치인부터 연예인까지 유명세를 떨치시는 분들이 "법정 소환", 또는 "검찰 소환"되시다 보니 대중들의 관심을 지대하게 받으면서 "소환"이라는 단어는 이제 초등학생이라도 편안하게 받아들일만한 단어가 되었으니, 온 가족들이 보는 TV 연예나 예능 프로그램에 자막으로도 자주 등장한다.
검찰에 소환되기 전 포토라인에 서는 주인공들의 표정을 보면 알겠지만, "소환"의 원래 의미는 "비자발성"을 내포한다. 가기 싫지만 법의 힘으로 부르는데 안갈 수 없으니 억지로 가는 것이 "소환"이다. 같은 맥락에서 "추억"이나 "기억"도 "소환"이라는 표현을 쓰게 되면 원래 힘들여 생각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홍차에 적신 마들렌느처럼 특정 대상이 생각지도 않게 기억을 자극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추억 소환"은 "비자발적 기억"과 궤를 같이 한다.
영어에서 "소환"이라는 의미를 전하는 동사는 "summon"이다. 우리말과 마찬가지로 "법정 소환"에서처럼 법원같은 곳에 소환하다라는 의미로 "summon"을 쓴다. 그런데 우연인지 모르지만, 우리말에서 "추억 소환"처럼 영어에서도 기억이나 추억을 불러들이는 경우 "summon"을 쓴다. 우리말에서 "기억을 소환한다"라는 표현이 최근에야 사용되기 시작했다면 영어에서 "summon"은 오래 전부터 사용되었지 때문에 사실 용례로 봐도 영어가 선배가 되겠다. 영어에서는 심지어 "기억"뿐만 아니라 "힘(energy)"이나 "용기(courage)"도 "소환" 즉, "summon"의 대상이다. 사실 우리말의 "소환"도 일상에 자주 쓰이면서 용법이 확대되고 있는 추세라 "용기 소환"이라는 말도 어색하지 않게 들린다.
동사 "summon"은 특히 "up"과 같이 쓰여서 그 의미가 강조된다. 예를 들어 "summon up the courage"은 "용기 소환", "summon up fond memories"라고 하면 "추억 소환"이 된다.
▶ "summon (up)" in Media
Sarah and Eric have finally summoned up the courage to express their true feelings for each other.
<TV Season Spoilers, 2019.4.25>
사라와 에릭은 마침내 서로를 향한 진심을 표현하기 위해 용기를 소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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