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ibes
요즘 인터넷,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서 "갬성"이라는 단어를 정말 자주 접한다. 사실 그 의미를 추측하는 게 어렵지는 않는데 분명 "감성"에 출처를 두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갬성"이 어떻게 생겨난 단어인지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져보아도 체계적으로 정리된 내용은 찾기 어렵다. 일설에 의하면 "개인의 감성"의 줄임말이라고도 하고, 단지 "감성"을 영어식으로 재미있게 발음하는데서 비롯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어쨋든 현재로서는 출처가 불분명하지만 삽시간에 대중들 사이에서 크게 어필한 단어임에는 분명하다. 필자로서는 "개인의 감성"의 준말이라는 설보다는 "감성"을 영어식으로 장난처럼 발음하는 것에서 출발했다는 설에 공감이 간다. 어차피 "감성"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개인적인" 것 아닌가?
"감성"이 "갬성"으로 발음이 옮겨가는 과정은 "삼성"이 미국인들에게 "샘성"으로 발음되는 원리에서 유추가능하다. "삼성"의 영어 표기가 "Samsung"이고 이 영어 이름을 보고 "삼성"이라고 발음해줄 미국인들은 없다. 영어 이름 중 하나인 "Sam"이 "샘"으로 발음되는 것처럼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Samsung"을 "샘성", 더 정확히는 "쌤성"에 가깝게 발음한다. 이런 맥락에서 "감성"을 발음나는 대로 영어로 옮기면 "gamsung"이 되고 이를 다시 영어식으로 발음하면 "갬성"이 된다.
우리는 외국인의 입장에서 평생 영어를 배우느라 고생하고 또 영어가 죽어도 안된다는 국민적 열등감도 안고 살아가는 숙명을 갖게 되었지만, 우리 일상에서 영어의 침투 정도가 높다는 것을 감안할 때 두 개의 언어를 다 아는 덕에 "갬성"과 같이 우리말과 영어를 동시에 활용한 언어적 유희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필자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학교에서 리서치 자료를 찾기 위한 툴에 대해서 시연하던 학교 직원이 자기는 영어 밖에 모르지만, 한국인들은 한국어를 포함한 더 많은 자료를 수집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말했을 때 큰 위안이 되지 않았지만, 사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한 언어를 아는 것보다 두개를, 두개보다 세개를 알면 유창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언어적 삶은 풍요로워질 것이다.
"갬성"은 "응답하라 19XX" 시리즈로 대표되는 복고적 감성이 풍미하는 사회 문화적 분위기와도 맞물려 있는 듯 하다. 이전에도 "복고"라는 말은 있었지만 대부분 패션계에 한정해서 자주 쓰이는 표현이었다. "유행은 돌아온다"라는 대명제에 따라 패션계서 "복고적 스타일"이라는 말은 패션 잡지에서도 자주 접할 수 있었는데, 이제 복고는 패션을 초월해 영화, 드라마, 카페, 식당, 간식거리까지 복고 스타일이 재해석되면서 이제 "복고"라는 단어가 좀 촌스럽거나 상투어처럼 느껴졌는지 이제는 "복고" 대신 "레트로(retro)"라는 단어가 "복고"를 대신하고 있으며, 거기에 복고를 새롭게 해석한다는 의미에서 "new"와 "retro"를 합성한 "뉴트로(newtro)"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이런 맥락에서 "감성"도 "복고"처럼 진부했는지 "복고"가 "레트로"가 되고 "뉴트로"가 된 변한 것처럼 어느새 "갬성"으로 변했다. "갬성"은 어찌 보면 무늬는 한국말이지만, "레트로"나 "뉴트로"같은 영어적 요소가 숨어 있다. 2000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응답하라 1994"는 "90년대 감성"이 아니라, "90년대 갬성"인 것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갬성"에서 뭔가 짝퉁이라는 어감도 느끼게 된다. "감성"이 "original"하고 "authentic"한 것이라면 "갬성"에서는 진짜는 아닌 "A급"이라는 느낌이 난다. 이는 발음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말에서 "어미" 대신 "애미", "아버지" 또는 "아비" 대신에 "애비"라고 부를 때 비하나 얕잡아 부르는 느낌을 받는 것과 비슷한 이치같다. 나의 아버지를 할머니, 즉 아버지의 어머니가 "니 애비"라고 부를 수 있지만, 아들 된 나의 입장에서 "내 애비"라고 부르는 것은 영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우리말에서 "아" 발음보다 "애" 발음이 세게 느껴지며, 어떤 단어에서 "아" 발음을 "애"로 변형하는 경우 비격식적으로 들린다.
"갬성"이 우리말과 영어를 동시에 활용한 말장난(?)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갬성"과 정확히 맞닿을 영어 표현이 있을 리 없다. 다만, 우리가 "갬성"이라는 단어를 쓸 자리에 미국인들은 어떤 단어를 쓰고, 한국인들이 "갬성"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느끼는 비슷한 감성을 어떤 단어를 들을 때 가장 가깝게 느낄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우리말에 "갬성"에 대응하는 영어 단어를 찾았다.
"갬성"은 우리 내면에서 독자적으로 일어나는 감정이 아니라 외부의 물리적인 것을 보거나 관찰할 때 일어나는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감수성이다. 예를 들어 여행을 가서 보게되는 풍경, 음식, 카페 분위기 등 외부적 자극이 개인적 과거 경험, 기억과 느낌을 불러 일으킬 때 우리의 "갬성"이 자극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영어 단어 중에는 "ambience"가 가장 "갬성"과 가까운 의미를 전달한다. 어떤 장소나 사물에서 풍기는 느낌을 말할 때 "ambience"를 쓰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ambience"는 "갬성"보다는 "감성"에 가까운 단어이다. 이 단어는 출처도 불어에서 왔기 때문에 미국인들도 영어식으로 "앰비언스"로 읽지 않고 "엉비엉스"에 가까운 불어식 발음으로 한다. "ambience"를 "갬성"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표준적이고, 우아한 발음을 가진 단어이다.
그래서 다음 후보를 찾아보자. "ambience"와 비슷한 단어로 "vibes"가 있다. 이 단어는 원래 "vibrations"를 싹뚝 잘라 만든 단어이다. "vibration"은 "진동"이라는 뜻이 있지만, 특히 복수로 써서 "vibrations"라고 하면 "사물이나 사람이 풍기는 느낌"이라는 의미가 있다. 미국에서 대부분의 젊은이들도 우리나라 젊은 사람들처럼 긴 단어로 표현하기 보다 당연히 "vibes"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그리고 어떤 단어가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원래 단어에서 탄생했지만, 더 많이 사용되게 되면 그 원래 단어와도 다른 어감이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vibes"도 원래 "vibrations"보다 더 많이 쓰이면서 새로운 어감을 갖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vibes"가 사용된지도 꽤 오래 되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영어사전에서는 이 단어를 "slang"의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있다. "갬성"이 아직 우리나라 사전에 표제어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필자는 감히 "갬성"을 영어로 표현하기에는 "vibes"가 적합하다고 말하고 싶다.
▶"vibes" in the Media
Last but not least, Ikea tackled the '80s vibes of Joyce Byers' living room from Stranger Things. <LittleThings, 2019.6.24>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이케아가 "Stranger Things" (미국 드라마 시리즈) 에 나온 조이스 바이어스 거실의 80년대 갬성을 건드리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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