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oised
에피소드 1. 1990년대 후반 갑자기 스타크래프트라는 온라인 게임이 열풍을 일으키며 게임방 바람이 불기 전까지 대학가 남학생들의 주요 오락거리 중 하나는 당구였다. 당구에 한번 빠지면 자려고 누워도 천장에 당구대가 그려진다고 할 정도로 중독성이 있는 스포츠(?)가 당구였다. 물론 스타크래프트라는 더 중독성 있는 오락에 밀려 대학가에서도 당구는 일인자 자리를 내어주기는 했지만, 당구는 그래도 남자들에게 꾸준히 사랑 받는 오락물이다. 당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각과 힘조절이다. 고수들은 큐대의 각만 보고도 "맞을 각"인지 안다. 당구 초보로서는 큐대의 각으로 이미 당구공의 동선과 각을 그려내는 고수의 예리한 시선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에피소드 2. 어린 시절 잠자리 좀 잡겠다고 잠자리와 기싸움해본 사람은 안다. 잠자리가 나뭇가지에 착륙하면 날개가 이단으로 각을 잡는 다는 것을... 잠자리가 처음 나뭇가지에 앉을 때는 날개가 나름 긴장된 상태이다. 그러다 안심하고 푹 쉬어도 되겠다 싶으면 날개의 긴장이 풀리면서 더 아래로 내려간다. 마치 헬리콥터 회전날개가 엔진이 꺼저 돌지 않을 때 양력을 잃어서 축 쳐지는 것과 비슷한 모양새다. 그러다 주변에 경계할 것이 발견되면 날개는 다시 바싹 긴장한 듯 한 단계 위로 올라가는데 이제 이 날개 각이 어느 때라도 "날 각"이다. 날개를 푹 쉬고 있는 잠자리와 달리 이런 날 각을 한 잠자리를 잡는 것은 쉽지 않다. 잠자리 좀 잡아본 경력이 있다면 날 각을 한 잠자리를 맨손으로 잡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 것이다.
요즘 부쩍 "~ 각이다"라는 표현을 많이 듣는다. 특히 "~" 자리에는 명사가 오는 것이 흔하다. "성공 각이다", "실패 각이다", "결혼 각이다", "연애 각이다"하는 식으로 쓴다. "~ 각이다"다 어디서 유래했는지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삽시간에 우리 언어 생활에 자리잡은 듯하다. 아마 일음절 "명사"인 "각" 앞에 다시 짧은 명사를 붙여 쓰는 언어적 재미와 다양하게 활용 폭을 넓힐 수 있는 점이 한 몫 한 듯하다.
당구에서 큐대가 공을 향하는 각을 보면 공이 제대로 튕겨 맞을 각인지 대충 짐작이 가듯이 일상생활에서 "~ 각이다"라고 하면 대충 어디로 가고 있는 각인지 알 수 있다는 뉘앙스를 준다. 이전같으면 "썸 탄다"라고 말할 자리에서 "연애 각이다"라고 하면 더 최신 표현인 듯한 느낌이 들만큼 "~ 각이다"가 자주 쓰인다.
그럼 "~ 각이다"라는 표현을 영어로는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 물론 "각"은 영어로 "angle"이다. 그러나 명사나 동사로 모두 쓰일 수 있는 단어 "angle"은 우리말에서 쓰는 "~각이다"라는 뉘앙스와는 거리가 있다. "angle"은 주로 무언가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관점을 표현하는 것과 관련이 있고, 큐대를 맞은 당구공이 튕겨 나가듯이 어딘가로 향하고 향할 것이라는 지향점을 표현하는데 쓰이지는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poised"가 더 적합하다. 사실 "poised"는 우리말에서 한 단어로 정확하게 정의하기가 마땅치 않은 단어였다. 적어도 "~각이다"라는 표현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지금이라도 영한사전에서 "poised"를 찾아보면 구질구질할 정도로 길게 번역하고 설명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poised"를 한국인들이 익숙하게 쓰고 용법도 잘 자리 잡은 "~ 각이다"와 연결하니 세상 이 보다 잘 맞는 설명이 없다.
"poised"의 의미의 출발은 변곡점에 있는 자세와 긴장에 있다. 예를 들자면 땅에 다리를 붙이고 있지만, 사실 근육은 잔뜩 긴장되어 이제 막 날아오를 준비가 된 새는 "poised for flight"인 것이다. 우리말로는 역시 "날 각"이다. 또한 적을 발견한 잠자리가 쉬던 날개에 힘을 주고 언제라도 날 수 있는 상태로 마찬가지이다. 도움닫기를 준비하고 있는 체조선수, 총소리에 뛰쳐나갈 준비로 엉덩이를 잔뜩 쳐들고 온몸의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려있는 100미터 육상선수도 보기에는 정지상태지만 도약을 위한 긴장감이 말이 아닌데 이런 상태를 표현하는 단어가 "poised"이다. 이런 긴장된 자세를 관찰하고 있는 사람은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뻔하게 예상할 수 있기 때문에 "poised"가 "~각이다"와 맥이 닿는다. "poised"가 수식어를 갖기 위해서는 단독으로 쓰기보다 전치사 "for"나 "to" 부정사가 붙어야 한다.
▶ "poised" in the Media
This is one of the reasons why the remake of Ocean's 11 in 2001 was immediately poised for success – it had the legacy of a classic film. <CineVue, 2018.9.24>
이것이 2001년 "오션스 11"의 리메이크가 즉시 성공각이었던 이유 중 하나다. 그 영화는 클래식 영화의 검증된 요소들을 계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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