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품팔아 직접 찾아간 미국의 인물, 건물, 그리고 사물 이야기

5. 서명은 이 사람처럼 큼직하고 자신있게: 존 행콕(John Hancock)

ktiffany 2025. 1. 7. 12:15

존 행콕(1737-1793)은 매사추세츠주 출신의 돈 많은 무역상이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고아가 되는 바람에 그의 삼촌 토마스 행콕(Thomas Hancock)의 가정에서 자랐다. 삼촌 토마스 행콕은 성공한 무역상이었었데, 삼촌 부부 사이에 자녀가 없었기 때문에 1764년 삼촌 존 행콕이 죽으면서 그의 사업을 물려받았고, 이를 통한 재력 덕분에 보스턴의 재계와 사교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로 떠올랐다.

<필자 사진> 보스턴 미술관(MFA Boston, Museum of Fine Arts Boston)에 소장된 John Hancock의 초상화. 미국 독립혁명기 활발하게 활동한 화가 John Singleton Copley (1738-1815)가 그렸다. 그림 속 John Hancock은 당시 28살이었다.

 
존 행콕은 주로 영국과 무역거래를 통해 돈을 벌고 있는데 영국 정부가 식민지 운영 자금 부담에 식민지에 직접 과세하려 시도하자 직접적으로 사업상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게 된다. 특히, 1768년 영국 세관 관리가 밀수 혐의로 존 행콕 소유의 무역선인 Liberty를 압류한 것이 영국정부와 직접적으로 갈등이 나타난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존 행콕은 결국 1765년 인지조례(the Stamp Act of 1765)에 반발해 영국의 폭정에 저항하고, 식민지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모인 비밀 결사조직인 the Sons of Liberty에 가입하고, 그의 재력을 바탕으로 금전적으로도 지원한다. 이렇게 존 행콕이 미국의 독립을 위한 혁명 활동을 시작하게 된 배경에는 개인적인 동기도 작용하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시작된 존 행콕의 행보는 부자 무역상이었던 그를 결국 미국 독립의 아버지 중 한 명이자, 정치인으로 완전히 탈바꿈하게되는 인생역전의 계기가 되었다. 그가 1775년 5월부터 2차 대륙회의(The Second Continental Congress [1775–1781])의 의장을 맡게 되었고, 그가 의장으로 재임한 기간에 그 유명한 미국의 독립선언이 승인된 것이다.
 
참고로, 우리가 알고 있는 공식적인 미국의 독립선언일은 1776년 7월 4일이지만, 실제 미국의 독립이 승인된 날은 그 이틀 전인 7월 2일이었다.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사람은 토마스 제퍼슨인데, 그가 선택된 것은 역시 글을 조리 있게 잘 쓰는 재능이 뛰어난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7월 4일은 독립선언이 승인된 후 공표할 독립선언문 초안을 각 식민지 대표들과 협의 조정하는 과정에 이틀이 더 걸리면서 최종적으로 독립선언문 최종안에 서명을 한 날이다. 이 서명은 필라델피아의 현재 Independence Hall의 Assembly Room에서 일어났다. 

<필자 사진>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Independence Hall 외부 전경. 원래는 Pennsylvania State House였다가 이름이 바뀐 것이다.

 

<필자 사진> Independence Hall 내 Assembly Room. 독립선언문(Declaration of Independece) 서명이 일어난 역사적인 장소이다. 이 방을 포함한 Independence Hall은 일반인에게 공개된 투어가 가능하다.

 
이 독립선언문에 대륙회의 의장 자격으로 가장 먼저 서명하게 되는 사람이 존 행콕(John Hancock)이다. 그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정중앙에 가장 크고 멋있게 자신의 서명을 남긴다. 독립선언문 서명본을 보면 각자 성향에 따라 다양한 글씨 크기로 제각각 서명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사실 정가운데 위치한 큼지막한 존 행콕의 서명만 눈에 들어온다. 일설에는 존 행콕이 독립선언문에 서명을 큼지막하게  이유는 영국의 왕 조지 3세(King George III)에게 잘 보이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기도 하는데, 이는 역사적 기록으로 확인된 바는 근거 없는 설일뿐이긴 하다. 

독립선언문(Declaration of Independece) 하단 한가운데 유독 큼지막한 John Hancock의 서명만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대범하게 남의 시선 신경안쓰고, 서명할 수 있는 사람의 MBTI가 궁금해지는데, John Hancock의 MBTI는 ENTP ( (Extraverted, Intuitive, Thinking, Perceiving)로 보인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ENTP는 본인의 비전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아웃사이더 성향이 있어 혁명가의 기질을 띤다고 하는데, 존 행콕이 혁명시대에 혁명을 성공시킨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잘 맞는 MBTI 성향 분석이다. 
 
 
미국 독립혁명의 성공에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던 존 행콕은 이제 독립선언문에 남긴 그의 대담한 서명으로 대부분 기억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영어에서는 "서명"이라는 의미로 "signature"라는 표현 대신 "John Hancock"이라는 표현을 현재도 쓰고 있다. 아마 이 표현을 썼을 때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쉽게 알아들을 것이다. 심지어 사전에도 표제어로 올라와 있는 일반 명사가 되었을 정도로 표준적 표현이 된 것이다.
 
이제 미국 원어민 앞에서 "I need your siganture." 대신에 "I need your John Hancock."이라는 표현을 한 번 사용해 보자. 아마, 꽤 신기하게 웃을 수도 있다. 우리가 한국어가 어눌한 미국인이 "조족지혈"이니 하고 사자성어라도 쓴다면 우리가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