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품팔아 직접 찾아간 미국의 인물, 건물, 그리고 사물 이야기

3. 6백만불짜리 바나나를 판 사나이를 만나다: Mr. Alam

ktiffany 2024. 12. 31. 04:40

 

<위키피디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6.2백만 달러에 낙찰된 "Comedian" by Maurizio Cattelan

 
2024년 11월 20일 뉴욕 소더비(Sotheby's)에서는 장안의 화제가 된 경매 물건이 있었다. 바로 덕 테이프(duct tape)으로 벽에 고정한 바나나이다. "Comedian"이라고 명명된 이 작품은 이탈리아 시각 예술가인 Maurizio Cattelan이 창안한 것으로, 나름 총 3 작품만 판매된 한정판(?)이다. 이미 2019년 국제적 아트페어(art fair)인  마이에미 비치 아트 바젤(Art Basel Miami Beach)에서 3개 작품이 12만 달러에서 15만 달러 가격에 완판되며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었는데, 금번에는 경매 최저 가격이 그 가격을 이미 훌쩍 뛰어넘는 무려 80만 달러로 책정되어 나왔다. 그러나, 작품명처럼 이런 코미디(?)같은 가격도 모자라 이번 경매에서는  입찰 시작 후 5분도 안되는 시간에 이미 7명의 입찰자들이 가격을 5백만불 이상으로 끌어올렸다고 하는데, 최종 낙찰가는 6.2백만 달러였다. 이 가격은 경매 수수료 1백만 달러를 포함한 가격이다. 소더비는 결국 애초 재시한 최저 경매가보다 높은 경매 수수료를 받아낸 셈이다. 

<필자 사진> 뉴욕 맨하탄 York Ave와 72 St.에 위치한 소더비(Sotheby's) 빌딩 전경

 
이 경매에서 최고가로 낙찰받은 사람은 중국 출신의 사업가인 저스틴 선(Justin Sun)이다. 소더비는 경매 전부터 암호화화폐(cryptocurrency)로 결제하는 것을 허용했고, 저스틴 선은 자신이 2014년 설립한 TRON이라는 블록체인 플랫폼에서 사용된는 TRX로 경매가격을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작품 소유권에 사실 바나나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개념 예술(conceptual art)로 분류되는 이 작품은 덕 테이프로 바나나를 부착하는 방법에 대한 상세 매뉴얼과 바나나가 상할 때 교체할 수 있는 권리가 들어있다고 한다. 평범한 사람으로서 그 정도 가격이면 평생 바나나 제공 쿠폰 정도의 서비스도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손해보는 기분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저스틴 선은 경매에 당첨된 후 그 바나나를 그 자리에서 먹어버리는 쇼를 연출했다. 이번 경매에서 그가 받은 미디어의 관심과 인지도 상승, 홍보 효과를 생각한다면, 사실 암호화화폐를 하는 그에게 6백만 달러는 비싼 가격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매우 전략적인 홍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어쨌든 성공한 사업가니까 말이다.

<위키피디아> 중국출신 사업가 저스틴 선(Justin Sun)

경매일로부터 일주일 뒤인 24년 11월 27일 뉴욕 타임즈는 이 경매와 관련해서 후속 기사를 내는데, 그 날 경매에서 팔린 바나나가 정확히 어디서 구매된 것인지 알려주는 기사였다. 그날의 6백만불 바나나는 아마존이 소유한 고급 과일 식료품 체인점인 Whole Foods Market도 아닌 경매 장소였던 소더비 빌딩 앞 가판 과일 판매대였다. 뉴욕 타임즈는 그 역사적 바나나를 판매한 주인공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필자 사진> 8th Ave 맨하탄 미드타운의 버스 터미널인 Port Authority 건너편에 위치한 뉴욕 타임즈(New York Times) 건물

 
그날 바나나를 판 주인공은 74세의 Alam (Mr. Alam)씨였다. Alam 씨는 방글라데시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던 사람인데, 아내를 여의고, 뉴욕 롱아일랜드에서 결혼해 살고 있는 딸과 더 가까이 있고자 2007년 미국으로 건너왔다고 한다. 그는 지금 뉴욕 브롱스(Bronx)에서 방 1개에 5명이 같이 거주하는 지하 방에서 월세 500불씩 내며 지내고 있다고 한다. 
 
뉴욕 타임즈 기자가 Alam 씨에게 본인이 판 바나나가 6백만불에 팔렸다는 얘기를 전하자 감정에 북받쳤다고 한다. 그는 사실 언제 누구에게 그 바나나를 팔았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사실 그가 일하고 있는 과일가판대조차도 그의 소유가 아니라 그는 시간당 12달러의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였다.
 

“I am a poor man. I have never had this kind of money; I have never seen this kind of money."

(나는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런 돈은 평생 가져본 적도 없고, 심지어 구경도 못해봤습니다.)

<필자 사진> 소더비 빌딩 앞 과일 가판대(사진 왼쪽 하단의 파란색 천막의 과일 가판대)에서 역사적인 6백만불 바나나가 팔렸다.

 
뉴욕 타임즈의 기사를 접한 필자는 갑자기 6백만불짜리 바나나를 판 주인공으로부터 바나나를 사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미국에서는 큰 휴일인 12월 크리스마스 직후라 그가 출근했을지 확신이 없었지만, 한번 가보기로 했다. 소더비 건물 길 건너편에서 과일 가판대가 열려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뉴욕 타임즈에서 한 송이에 35센트, 4송이에 1달러로 판매한다고 말한대로 였다. 사실 그 가격은 맨하탄 과일 가판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가격이다.  과일 가판대에 다가서자 Alam 씨를 단박에 알아 볼 수 있었다. 

<필자 사진> 사진 맨 왼쪽에 있는 검은 모자와 옷을 입고 있는 남성이 6백만불 바나나를 판 주인공인 Alam 씨이다.

6백만불 바나나를 판 이후 그 과일 가판대는 달라진 것이 없는 그냥 여느 과일가판대였다. 지나가는 행인이 그런 바나나가 팔린 사실을 알 방법을 알려주는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보통 복권을 파는 가판대에서 큰 돈을 딴 복권이 나오면 홍보거리가 되고, 가게 앞에 크게 "5만달러 Winner를 판 가게"라는 식의 홍보를 볼 수 있는데 미국에서 너무 자연스럽고 잘 어울리는 그런 식의 홍보 따위는 없었다. 
그저 다른 가판대에서 과일을 사듯 Alam 씨에게 바나나 가격을 물었더니 짧은 영어로 4개에 1달러라는 말만 건너왔다. 친절할 것도 없고, 불친절할 것도 없는 무표정으로 그 동안 인생이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얼굴색과 거친 주름의 할아버지였다. 그에게 1불어치 바나나를 달라고 하니 곧 비닐에 포장된 Dole 바나나를 주면서 다른 비밀에 포장된 바나 송이 중 하나를 꺽어 넣어준다. 당연히 덤이라는 생색내기도 없다. 그렇게 싱겁게 우리의 6백만불 바나나 거래는 끝이 났다. 

<필자 사진> 필자가 Alam 씨로부터 구매한 돌(Dole) 바나나: 4개를 사고, 1개는 덤으로 받았다. 구매 당일 저녁이 되니 벌써 색깔이 변하고 있다.

Comedian이라 제목의 덕 테이프(duct tape)으로 고정한 바나나 작품은 사실상 공식적으로 바나나라는 실체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필자는 왠지 이미 Alam 씨가 이 작품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 속에 그는 이미 이 경매 스토리의 한 부분이었다. 이 가판대에서 Alam 씨의 손을 거친 바나나만이 작품이 될 수 있다고 한다면 이 테이프 바나나 작품은 더 쉽게 복제하기 어려운 작품이 된다. 그래서인지 바나나 봉지를 들고 가는 기분이 마치 6백만불 미술품을 들고 가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집에 가서 이 바나나를 덕 테이프를 사다가 붙일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참고로, 3개만 팔린 이 작품 중 하나는 맨하탄의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에 기증되었다. 현재 전시 중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아무튼 공공 미술관에 기증됨으로써 대중이 접할 수 있는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구겜하임 미술관은 사실 Alam 씨의 과일가판대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Mr. Alam 씨의 과일 가판대에서 바나나를 구매해 전시한다면 누구나 복제하기 쉬워보이는 그 작품이 좀더 독창적인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도 해본다.
 
이 역사적 경매 이후 작가인  Maurizio Cattelan는 본 경매가 매우 흥미로운 일이라고 하면서도 경매 수익 중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작가는 천문학적 수익을 기록하는 미술 작품의 원작자들이 그 수익의 일부도 향유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