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품팔아 직접 찾아간 미국의 인물, 건물, 그리고 사물 이야기

1. 그림 속 네 딸의 운명은?: The Daughters of Edward Darley Boit

ktiffany 2024. 12. 26. 06:44

이 그림은 미국이 급속한 산업화와 성장으로 부를 축적한 도금시대(The Gilded Age)에 활동한 미국 화가 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rt, 1856–1925)가 그린 "The Daughters of Edward Darley Boit (에드워드 달리 보이트의 딸들)"이라는 작품이다. 1882년 가을에 끝낸 작품이라고 하니까 사전트가 겨우 26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완성한 명작이다. 이 그림은 보스턴 미술관(Museum of Fine Arts Boston, MFA Boston) 2층에 전시되어 있는 미술관의 대표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딸들의 아버지인 에드워드 달리 보이트는 보스턴에서 태어나고, 하버드 출신의 엘리트 변호사였지만, 결국 화가로 전향했다고 한다. 딸이 넷이나 되는 딸부잣집의 아버지가 사전트에게 이 그림을 의뢰한 배경은 정확게 알려진 바는 없다고 한다.  아마 부모의 처음 의도는 네 딸들의 전통적 스타일의 초상화를 생각하며 그림을 부탁했을 것인데, 결국 화가의 재량에 따라 상당히 전통과는 동떨어진 초상화라고 분류하기도 애매한 작품이 탄생했다. 가족의 초상화를 의뢰했을 때 이런 초상화를 받은 사람은 상당히 당혹스러웠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사전트와도 아는 사이였던 에드워드 달리 보이트는 사전트에 대한 상당한 신뢰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 사진> The Daughters of Edward Darley Boit by John Singer Sargent 보스턴 미술관(Museum of Fine Arts Boston) 2층에 전시되어 있다.

 
사진으로만 봐서는 그림의 크기를 짐작하기 어렵지만, 실제 그림은 상당히 큰 그림이다. 보스턴 미술관에서는 이 그림의 크기를 쉽게 알 수 있는 그림 외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다. 실제 전시장에는 그림 속에 등장하는 커다란 일본 화병 두 개를 그림 양쪽에 배치해 두고 있는데 그림 속 화병이 큰 딸들의 키보다도 훌쩍 크다는 사실만 봐도 그림 높이가 성인 키 이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100년이 넘은 그림 속의 사물이 그대로 그림 밖에 있다는 것이 무언가 시공을 옮겨온 듯한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대부분의 공간을 과감하게 어두운 배경에 할애한 그림이기 떄문에 이런 공간감을 배가시키기 위해 정사각형의 큰 프레임이 잘 어울리고, 실제로 그림 앞에 섰을 때 압도감이 올라온다.

그림 밖으로 나온 그림 속의 화병: 보스턴 미술관(Museum of Fine Arts Boston)

 
아무 표정 없이 관람객을 뻔하게 응시하는 딸들의 시선이 수수께끼 같은데, 이런 시선 처리와 어두운 배경이 어디선가 본듯한 친숙한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실제로 사전트는 이 그림 완성 몇 년전인 1789년에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국립 미술관(MuseoNacional del Prado)에 직접 가서 17세기 화가인 디에고 벨라스케즈(Diego Velázquez)의 작품들을 모사했고, 특히 그의 작품들 중에서도 시녀들(Las Meninas)에 사용된 어두운 공간감과 그림 밖의 관람객에게 약간의 긴장과 불편함, 신비감을 일으키는 정면을 보는 시선을 이 그림에 적용했다.

<위키피디아> 시녀들(Las Meninas) by Diego Velázquez,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MuseoNacional del Prado) 소장

 
아무튼 The Daughters of Edward Darley Boit도 나름 초상화이고 모두 실제하는 인물들이다 보니 물론 100년도 넘은 시점에 모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들이지만, 이 그림 이후 신비로운 무표정을 짓고 있던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금해진다. 마치 학창시절 졸업사진의 친구들, 또는 가족사진의 형제자매들이 먼훗날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존재하거나 이제는 세상에 아예 존재하지 않게되면서 느끼게 되는 묘한 기분과도 같다고 할까? 다른 사람의 운명과 죽음을 접하면서 남의 일처럼 객관화할 수만은 없고, 일말의 불편을 느끼게 되는 것은 그 운명과 죽음은 결국 나의 것이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사전트의 그림으로 돌아가서 인물들을 소개해보자면, 맨 좌측에 있는 뒷짐 지고 서있는 딸이 Mary Louisa(당시 8살), 화병에 기대어 선 채 시선을 다른 곳에 두고 있는 장녀인 Florence (당시 14살)과 그 옆의 Jane(당시 12살), 그리고 마지막으로 막내인 Julia (당시 4살)이다. 이 그림 속 주인공인 네 딸들은 1919년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이 그림을 직접 보스턴 미술관에 기증함으로써 이 그림을 대중들이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우선 이 네 딸들은 아무도 결혼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 네 딸들 중 가장 먼저 세상을 등진 이는 장녀인 Florence였다. 1919년 51세의 나이로 파리에서 죽었다고 한다.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나머지 세 자매는 미국으로 이주했다. Julia와 Mary Louisa는 뉴포트(Newport)에 살았는데, Mary Louisa는 1945년 71세에 세상을 뜨고, Jane은 1955년 향년 85세의 나이로 코네티컷주의 그리니치(Greenwich)에서 생을 마감했다. 마지막으로 Julia는 1969년 91세의 나이로 죽었다.  결국 그림 속 막내가 제일 오래 살았다. 특히 그림 뒷편에 선 큰 딸들인 Florence와 Jane은 정신질환이 있었다고 하는데, 배경의 가장 어두운 뒷편에 서 있는 이들의 모습이 마치 그림이 이미 이들의 어두운 운명을 예고한 것 같다. 장녀인 Florence가 일찍 죽기는 했지만, 대체로  나머지 세 자매는 모두 70세 이상 산 것으로 봐서  장수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