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연말 뉴욕 맨하탄에서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크리스마스 풍경이 있다. 사실 뉴욕 맨하탄만큼 크리스마스에 진심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돈이나 정성이나 매년 맨하탄의 크리스마스는 최고의 화력을 자랑하는 듯하다. 그 대표적인 1호 풍경은 역시 락펠러센터의 크리스마스트리일 것이다. 이 트리는 매년 하반기부터 트리감으로 적당한 나무를 찾아다니는 트리 헌팅을 통해 조달되는데, 트리 소유주의 기부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트리 선정 과정과 결과도 극비로 진행되기 때문에 트리를 제공한 소유자가 아무리 입이 간질간질해도 꾹 참아야 한다. 공짜로 주는 것이지만, 선정된 것이 가문의 영광일 만큼 락펠러센터 크리스마스트리는 그 의미가 깊다.

또 하나 대형 트리 때문에 가려지기 쉬운 것이 락펠러센터 크리스마스트리 앞 채널 가든(Channel Gardens)에 설치되는 12명의 나팔 부는 천사들이다. 이 천사들은 임시설치물이 아니라 예술가인 Valerie Clarebout이 1955년 만든 작품으로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락펠러센터 채널 가든에 설치되고 있다. 이 천사들은 크리스마스트리 정상에 있는 별을 향해 나팔을 불고 있는 형상인데 왕의 탄생을 알리는 동방박사들이 본 그 별을 상징한다. 이 트리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블록을 감쌀정도로 긴 줄을 한참 서야 하기 때문에 엄두 내기도 힘든 수준이다.
사실 채널가든에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아닌 평시에도 유명한 작가들의 조각 같은 대형 작품들이 많이 전시되는데, 2023년에는 한국 작가로는 최초로 이배 씨의 "불로부터(Issue du Feu)"라는 작품이 전시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실 락펠러센터 외부 공간은 Jeff Koons나 Kaws 같은 내로라하는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주로 전시되는 곳인데 한국 작가가 당당하게 뉴욕 한복판에 작품을 올리는 것을 보면 K-팝뿐만 아니라 순수예술계에서도 한국의 위상이 계속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

이제 락펠러센터 크리스마스트리로부터 눈을 돌려 반대편을 보면 뉴욕을 대표하는 명품 백화점인 Saks Fifth 크리스마스 조명쇼가 눈길을 끈다. 2023년도에는 특히 크리스찬 디올과 협업해서 아주 세련되고 훨씬 업그레이드된 조명쇼를 선보였는데, 충격적인 사실은 2024년 이 Saks Fifth의 전통과도 같은 크리스마스 조명쇼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통처럼 자리 잡은 행사는 웬만하면 중단하는 일이 없는 미국인들인데 Saks Fifth가 온라인 상점에 치여 오프라인에서 여간 고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맨하탄 5번가를 중심으로 한 미드타운에서 북쪽 센트럴파크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까르티에 건물 조명장식부터 티파니의 윈도우 장식, 루이뷔통 스토어까지 눈요기는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Saks Fifth보다 더 명품취급을 받는다는 전통 있는 백화점 버그도프굿맨(Bergdoff Goodman) 윈도우 장식도 볼거리가 상당하다.




그리고, 마침내 영화 "나 홀로 집에'에서 등장하기도 한 플라자 호텔(Plaza Hotel)을 끼고돌아 어퍼 웨스트에 사이드에 이르면 이제 크리스마스 시즌 공연이 가득한 링컨 센터(Lincoln Center for the Performaing Arts)에 도착하게 된다.

링컨센터를 정면에서 바라보면 3개의 웅장한 건물이 중앙 및 좌우로 우뚝 솟아있는데 중앙 분수대를 기준으로 가운데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Metropolitan Opera, Met Opera)이고, 그 좌측이 발레 전용 극장인 David H. Koch Theater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측에 2022년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마친 뉴욕 필하모닉 심포니 오케스트라(New York Philharmonic, New York Phil, NYPhil)의 상주 공연무대인 David Geffen 홀이 자리하고 있다.



NYPhil은 최근 베네수엘라 출신의 스타 지휘자인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LAPhil)의 Gustavo Dudamel을 영입하는 데 성공하여 레너드 번스타인의 리더십하의 번영과 재기를 노리고 있는 듯하다.

참고로, 코로나 기간 동안 뉴욕필을 이끈 지휘자는 네덜란드 출신의 Jaap van Zweden인데 이 지휘자는 마침 서울시향으로 영입된 바 있다. 사실 이 지휘자는 뉴욕필 재임 기간 좋은 평을 듣지 못하였다. 그가 24년 6월 David Geffen 홀에서 이별 무대로 선택한 곡은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의 2번 교향곡 "부활(Resurrection)"이었는데, 이 연주는 꽤 호평을 받았다. 사실, 뉴욕필 재임기간이 코로나 기간과 겹치고, David Geffen 홀도 공사 중으로 여기저기 공연장을 다니는 유랑 생활도 해야 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여러 가지로 뉴욕필과의 인연은 좀 없었던 듯하다.

뉴욕 맨하탄 미드타운(Midtown) 5번가부터 쭉 구경하고 링컨센터까지 올라오느라 오래 걸렸는데 이제 이 세 대형 공연장의 12월 공연 모습을 살펴보자.
우선, 메트 오페라는 12월 오페라가 이태리어나 독일어 등 외국어로 공연되고, 공연시간도 상당히 길다는 점을 고려해 온 가족이 같이 볼 수 있는 축약버전 오페라로 모짜르트의 "The Magic Flute (마술피리)"를 매년 레퍼토리로 선보이고 있다. 이 오페라는 시간도 2시간 정도로 짧게 줄이고, 또 영어로 공연되는데 이 오페라의 여자주인공인 Pamina 역할을 우리나라 소프라노인 박혜상(영문명: Hera Hyesang Park)씨가 맡기도 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뉴욕필은 매년 12월이면 핸델의 메시아(Handel's Messiah)를 선보인다. 사실 핸델의 메시아는 워낙 연말이면 당연히 연주되어야 하는 곡으로 전통처럼 자리 잡았기 때문에 뉴욕필뿐만 아니라, 맨하탄에서도 교회, 성당 할 것 없이 모두 선보이는 공연이기도 하다. 소프라노 박혜상 씨는 23년 12월 뉴욕필과 핸델의 메시아에서도 소프라노로 노래를 부른 바 있다. 그때 의상으로 개량 한복 같은 의상을 입고 나온 것으로 기억하는데,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것들을 틈틈이 알리고 싶어 하는 노력이 엿보인다.
그리고, 세 번째로 대망의 마지막 공연무대인 NYC 발레의 "The Nutcracker (호두까기인형)"이다. 정말 이 발레 공연만큼은 정말 NYC 발레만의 것이라고 할 만하다. 물론 다른 발레단들도 연말이면 "호두까기인형"을 선보이지만, NYC 발레의 "호두까기인형"만큼 세련되고 투자를 많이 한 공연을 보기는 힘들 것이다. 이 발레공연은 정말 NYC 발레단에도 매우 중요한 공연으로 공연 비용도 많이 들기도 하고, 그만큼, 수익도 많이 내고 있다. 얼마나 투자가 많이 되는 공연인지 알 수 있는 게 무대에 등장하는 크리스마스트리만 봐도 방안에 작은 키로 있던 트리가 점점 자라 거의 13미터(41 피트) 가까이 커지는 모습이 장관이다. 결론적으로 1년 총수익의 45% 정도가 겨우 한 달 반 정도 공연하는 "호두까기인형"에서 나온다고 한다. 이렇게 번 수익으로 적자가 나는 다른 발레공연도 무대에 올릴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웬만한 발레공연들은 꼭대기층 무대까지 채우지 못해 3층(Third Ring) 정도까지만 개방하는 경우도 많다. 한마디로 "호두까기인형"이 NYC 발레의 효자이자 돈줄(Cash Cow)이다. 그리고, 매년말 공연 횟수는 총 47회 정도 된다고 한다.

음악계에 연말 대표공연으로 핸델의 메시아와 더불어 발레에서는 전 세계적으로도 당연히 해야 하는 공연처럼 인식되고, 또 관객들도 당연히 봐야 하는 발레 공연으로 인식되는 "호두까기인형"이 처음부터 이런 대접을 받은 것은 아니다. 그 성공의 아버지가 조지 발란신(George Balanchine)이다.
사실 호두까기인형의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은 1816년 E.T.A. Hoffman (호프만)의 "The Nutcracker and the Mouse King"이다. 사실 현재 아름답고 밝은 동화 같은 분위기와는 달리 그 작품은 성인들을 위한 소설로 무섭고 어두웠다고 한다. 그런데, 삼총사로 유명한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er Dumas)가 아동을 위한 작품으로 개작하면서 지금의 동화 같은 발레가 만들어질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러시아 임페리얼 발레(Russian Imperial Gallet)의 수석 발레 마스터였던 Marius Petipa가 이 개작된 이야기를 좋아해서 차이코프스키에게 발레 음악을 써달라고 요청하였고, 안무는 Lev Invanov가 만들었다. 이후 호두까기인형이 초연된 것은 1892년 12월 러시아의 세인트 페터스부르그( St. Petersburg)였다. 그 당시 공연은 관객들이나 비평가 모두에게 실패작으로 평가받았다. 심지어 음악을 작곡한 차이코프스키는 그 초연 후 1년도 안되어 죽으면서 호두까기인형이 이런 초대형 블록버스터가 되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조지 발란신은 뉴욕발레단의 창단자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원래 러시아에서 자랐며, 러시아 임페리얼 발레 스쿨( Russian Imperial Ballet School)에서 발레를 배우고, 세인트 페터스부르그( St. Petersburg) 음악학교(conservatory)에서 음악을 공부했다. 특히 피아노를 잘했는데, 이는 나중에 복잡한 오케스트라 곡을 피아노 연주로 축약하는데 능해서 발레 안무를 만드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발란신은 러시아를 떠나 원래 파리 등 유럽에서 발레 댄서로 활동을 시작했다. 파리 Ballets Russes의 단장이었던 Sergei Diaghilev가 오디션에 초청하고, 나중에 발란신을 안무가의 가능성에 대해 눈여겨보면서 스트라빈스키 발레의 새 버전을 무대에 올리는 것을 보고, 기존 Bronislava Nijinska 대신 발레 마스터로 임명했다. 또 얼마 안 가 발란신이 무릎 부상으로 춤을 추기 어렵게 되면서 전업 안무가로 전향하게 된다.
그리고, 이후 미국에 제대로 된 발레단을 만들고 싶다는 비전을 갖고 있던 뉴욕 로체스처 태생의 춤에 조예가 깊던 Lincoln Kirstein의 초청으로 미국으로 건너와 1934년 발란신과 Lincoln Kirstein은 뉴욕시에 아메리칸 벨레 스쿨(School of American Ballet)을 설립하고, 이후에도 몇 개의 발레극장을 시도했다.
1935년 두 사람은 아메리칸 발레(American Ballet)라는 투어 발레단을 세웠는데, 마침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상주 발레단 제안을 받아 수락하였지만, 재정 지원이 충분하지 않아 많은 발레 공연을 올리 수가 없었다고 한다. 결국 1938년 발란신과 메트 오페라는 결별하게 된다.
1941년 다시 incoln Kirstein과 발란신은 넬슨 락펠러( Nelson Rockefeller)의 후원으로 American Ballet Caravan을 조직해 남아메리카를 투어 하기도 했다.
1946년 발란신과 Kirstein은 또 정기 구독 관객만 대상으로 하는 발레단인 Ballet Society를 세운다. City Center에서 Ballet Society 공연을 보게 된 City Center 재무위원회 의장이었던 Morton Baum이 City Center 종합공연 시설에 "New York City Ballet"로 합류할 수 있도록 주선하면서 마침내 유랑 생활을 끝내고, 1948년 10월 New York City Ballet (NYCB)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요약하자면, 러시아의 발레 무용수였던 발란신은 안무가로서의 재능을 알아본 사람, 그 실력을 알아보고, 뉴욕시에 제대로 된 발레단을 만들고자 했던 비전을 가진 사람이 있었기에 뉴욕시 전문 발레단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발란신이 초연에서 망한 호두까기인형을 2막 발레로 올리기로 했을 때는 의아함이 있었다고 하는데, 결국 그는 호두까기인형을 발레 최고의 흥행작으로 재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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