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로는 30 Rockefeller Plaza에 위치한 록펠러 센터 빌딩이자 현재 Comcast 빌딩 로비에는 엄청나게 큰 벽화가 그려져 있다. "American Progress"라는 제목의 이 벽화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태생의 화가인 호세 마리아 세르트(José Maria Sert)의 작품이다. 언뜻 보면 크고 멋진 벽화일 뿐이지만, 이 벽화가 그려지기까지에는 사연이 꽤 있었다.
1932년 록펠러 가문 일가는 멕시코의 유명한 예술가인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에게 30 Rockefeller 빌딩 로비를 장식할 벽화를 그려달라고 의뢰했다. John D. Rockefeller Jr. 의 아내이자 뉴욕 현대미술관 MOMA의 공동창립자 중 한 사람인 Abby Rockefeller는 이전부터 디에고 리베라의 열렬한 팬이었다고 한다. 디에고 리베라는 좌편향 화가로 잘 알려져 있었지만, 그의 예술적 재능뿐만 아니라 상업성도 인정했기 때문에 록펠러 일가는 이를 알고도 그에게 벽화를 의뢰한 것이었다.
디에고 리베라는 또 다른 유명한 멕시코 출신의 여류화가인 프리다 칼로(Frida Kahlo)의 남편이기도 하다. 아마 송승헌보다도 더 진한 일(一) 자 눈썹은 프리다 칼로의 트레이드마크로 미술에 조금만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화가이다. 사실 지금은 프리다 칼로의 인지도가 훨씬 높다고 할 수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프리다 칼로보다 디에고 리베라가 더 유명한 화가였다.
처음 록펠러 가문을 위해 그리기로 한 벽화의 원래 스케치는 나중에 실제로 디에고 리베라가 그린 벽화와는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디에고 리베라가 독점자본주의의 최고봉에 있다고 할 수 있는 록펠러 가문을 위해 그림을 그리며, 변절했다는 이유로 좌익 및 공산주의 단체의 공격을 받았고, 마침내 한 신문에서는 "디에고 리베라가 공산주의 활동을 그리는데, 이 돈을 록펠러가 대고 있다"라고 대서특필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 이르자, 디에고 리베라는 그림의 거의 완성되는 단계에서 대본에도 없던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을 그림에서도 눈에 잘 띄는 한 가운데 그려 넣는다.
깜짝 놀란 록펠러측에서 레닌을 지울 것을 요구하자 디에고 리베라는 이를 거절하고, 대신에 정치적 균형을 위해 반대쪽에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을 그려주겠다고 역제안하기도 했다. 결국 이 협상은 결렬되었다. 일설에는 리베라가 "그림은 내 것"이라고 주장하자, 록펠러는 "벽은 내 것"이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뭔가 불길함을 직감한 디에고 리베라가 조수를 시켜 얼른 벽화의 사진을 찍어오도록 시켰고, 그 예감은 적중했다. 빌딩 관리인들은 약속했던 그림값 2만 1천 달러를 모두 지급하고, 그림 그리는 현장에서 디에고 리베라를 내쫓고, 그림은 커튼으로 가려버렸다. 그림을 뉴욕 현대미술관 MOMA로 양도하기 위한 협상과 리베라 지지자들의 시위에도 불구하고, 1934년 2월 작업자들을 불러 은밀하게 그 벽화를 모두 뜯어냈다. 리베라는 자신의 그림을 파괴함으로써 록펠러가 문화적 반달리즘(Vandalism)을 저질렀다고 비난한 덕분에 양측의 관계는 더 악화되었다고 한다.
결국 디에고의 조수가 찍은 흑백 사진이 그 미완성 그림의 유일한 사진이었고, 리베라는 멕시코로 돌아가 "Man, Controller of the Universe (인간, 우주의 조종자)"라는 제목으로 그림을 재현했다.
그리고, 록펠러는 이 그림을 뜯어낸 자리에 그 당시 잘 나가던 화가 호세 마리아 세르트에게 "Amercian Progress (미국의 진보)"라는 벽화를 그려달라고 의뢰했고, 이 그림이 현재에도 록펠러 빌딩에 남아있는 벽화이다.
세르트는 살아있는 동안 잘 나가던 화가였지만, 1945년 사망 후에는 미술계에서 까마득하게 잊혔다. 그가 미술 비평계에서 사라진 이유는 스페인 내전 당시 파시스트 지도자였던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을 대놓고 지지한다고 말하고 다니고, 1939년 스페인의 독재자가 된 이후에도 그와 친분을 지속한 것도 한몫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세르트에 대해서 많은 자료가 남아 있지는 않다. 그러고 보니, 세르트나 디에고 리베라나 정치색 있는 예술가들이긴 매한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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