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증권거래소(NYSE)가 있는 뉴욕의 금융 지구(Financial District)의 관광객 사이에서 매우 유명한 황소상은 사실 이름도 많다. Wall Street Bull이라고도 하고, Finnancial District Bull이라고도 하며, Bowling Green Bull, 또는 New York Stock Exchange Bull이라고도 한다. 이런 이름들은 모두 황소상의 위치와 관련 있는 이름들인데, 지역을 배제하고 조각 자체 이미지에 충실한 명칭은 역시 "The Charing Bull (돌진하는 황소)"이다. 우리나라 여의도에도 증권사나 금융투자협회 같은 곳에 황소상이 있기는 하지만, 사이즈나 역동성에서 뉴욕의 것을 따라올 것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Wall Street Bull이라는 명칭에도 불구하고, 사실 이 동상은 정확히 말하자면 월스트리트에 설치된 적은 없다. 월스트리트 근처에 설치된 것이었다.
그런데, 무게만 7천 파운드(야 3.2톤)인 브론즈 재료의 이 육중한 황소상은 어떻게 지금 그 자리에 존재하게 된 것일까? 언뜻 뉴욕 증권거래소 근처에 있으니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설치한 것이 아닐까하는 단순한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황소의 존재 스토리는 정말 의외이다.
이 황소 작품은 이탈리아 시실리 출신의 조각가인 Arturo Di Modica (1941 ~ 2021)의 작품이다.Di Modica는 나름 이탈리아에서도 조각으로 입지를 다졌지만, 1973년 미국으로 이민 와서 뉴욕에 정착한다. 그는 맨하탄 소호(SOHO, South of Houston Street)에 스튜디오를 열었다가 1978년에 맨하탄 놀리타(Nolita, Northern Little Italy)로 옮기기도 했다.
Di Modica는 1987년 10월 19일(월)에 촉발된 Black Monday로 칭하는 주식시장 붕괴 이후 Di Modica는 그를 미국의 품에 받아주고, 그가 예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 미국에 보답하는 뜻으로 누구에게 별도로 의뢰받지 않은 상태에서, 스스로 황소 작품을 기획했다. Di Modica는 미국인들의 힘을 상징하는 의미로 황소를 택했다고 한다. 그는 작품의 재료비부터 실제 작품 설치까지 모두 본인의 자력으로 했다. 그는 그 작품을 만드는데 재료비로 35만 달러씩이나 본인의 돈을 썼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비용과 공을 들인 작품이지만, 이 조각상이 처음부터 월스트리트의 환영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 작품 설치는 밤에 은밀하게 이루어진 엄연한 불법 설치물(?)이었다.
그는 이 작품을 몰래 설치하기 위해서 사전에 치밀하게 기획했다. 작품을 설치하려하는 장소에서 며칠을 보내며 경찰의 순찰 시간까지 계산했는데 경찰이 순찰 도는데 4분 정도 여유가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1989년 12월 15일 새벽 동트기 전에 친구들과 조각상을 트럭에 싣고, 설치하려는 장소에 갔다. 그런데, 자신이 작품을 설치하려던 딱 그곳에 12미터짜리 크리스마스트리가 먼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고, 그냥 트리 밑에 황소상을 내리도록 한다. 이 소식은 전 세계 화젯거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New York Post 전면을 장식하는 기사거리가 되었다. 말 그대로 하루아침에 대히트를 친 것이다.
Di Modica는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들과 인사하면서 황소상 옆을 지켰는데, 점심 먹으러 자리를 비운 사이에 뉴욕 증권거래소(NYSE)는 조각상을 치우도록 조치했다. 그러나, 황소를 돌려놓으라는 대중들의 요구가 빗발치자 공원 관리위원인 Henry Stern이 12월 20일에 원래 위치와 가까운 Bowling Green으로 옮겨 조각상을 설치할 수 있게 했고, 지금까지 같은 자리에 황소상이 있게 되었다. 기술적으로 황소상은 그 자리에 임시 설치허가만을 받은 것이지만, 지금까지도 영구 설치물처럼 아무런 조치 없이 그곳에 있는 아주 특이한 케이스이다.
이 작품은 따라서 NYSE나 뉴욕시에서 구입한 적도 없는 일종의 불법 설치물이며, 저작권도 누구에게 이전되지 않고 계속 Di Modica가 소유하고 있있다. 실제로, 이 작품을 본떠 만든 레플리카(replica)를 상업적으로 만들어 파는 경우에는 작가 본인도 적극적으로 소송까지 제기하는 등 저작권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임했다고 한다.
Di Modica는 미국 이민자로서 미국에서 활동했지만, 결국 2021년 2월 고향인 이탈리아 시실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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