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품팔아 직접 찾아간 미국의 인물, 건물, 그리고 사물 이야기

12. 죽어서야 사진작가로 탄생한 유모: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

ktiffany 2025. 1. 18. 02:49

2024년 9월 29일 일요일, 늘 그렇듯 아침에 눈을 뜨면 맨 먼저 핸드폰의 구글창을 열어 구글이 추천해 주는 기사나 블로그를 스캔하는 버릇대로 그날도 아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엄청난 기사 하나가 번쩍 눈에 들어왔다. 평소에 한 번은 가봐야지 하면서 미뤄왔던 스웨덴의 사진미술관인 Fotografika New York이 문을 닫는다는 것과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의 사진 전시가 그곳에서 열린다는 것이었다. 결국 Fotografika 사진미술관과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의 사진을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는 의미이다.
 
사실 필자는 사진예술에 큰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굳이 Fotografika에 가보고 싶었던 것은 미술관 건물이 너무 멋스러웠기 때문이다. 알고보니 281 Park Ave South에 위치한 이 건물은 1894년에 완성되었으며, 코르넬리우스 밴더빌트(Cornelius Vanderbilt)와 J.P. 모건(J. Pierpont Morgan) 같은 거물들의 도움으로 지어진 교회 본부 역할을 한 건물이다. 보자르(Beax-Art) 양식으로 멋스럽게 지어진 이 건물은 아니나 다를까 1979년 뉴욕시의 랜드마크(Landmark)로 지정되었다. 일단 뉴욕시의 랜드마크로 지정되면 사유건물일지라도 허가 없이 허물거나, 개조 등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 
 
정말 다행인 것은 다른 일정상 오후 늦게나 Fotografika에 갈 수 있었는데, 메트로폴리탄 뮤지엄(Met Museum)이나 MOMA 같이 5시면 문을 닫는 여느 공공미술관과는 달리 Fotografika는 오후 9시까지 문을 열었다. 지금은 애석하게도 Fotografika는 다른 곳에서 다시 문을 열겠다고 했지만, 아직까지도 이전 장소를 못정했는지 감감무소식이다. 

<필자 사진> Fotografika가 임대해 사진미술관으로 사용한 281 Park Ave South 건물

 
사진예술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서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의 사진전을 굳이 찾아보고 싶었던 이유는 그녀의 특이한 이력과 흥미로운 이야기때문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비비안 마이어는 생전에 사진을 15만 장도 더 찍었지만, 아무도 그녀가 사진예술가라는 것을 몰랐으며, 사진예술가로 인정받은 것은 사후의 일이었다. 

<필자 사진>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 자화상

그럼 어떻게 된 일일까? 
미국은 개인창고 천국이다. 그 비싼 맨하탄의 금싸라기 땅에도 "Storage"라고 불리는 개인에게 물건 보관 공간을 임대해 주는 창고건물이 있다. 워낙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미국인들의 습성 때문인지 창고업이 매우 잘 된다고 한다.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들도 결국 이 창고에서 나왔다. 물건을 창고에 보관해주다 보면 보관료를 연체하거나, 아예 보관된 물건을 찾아가지 않는 경우도 생긴다. 이럴 경우 창고회사는 이런 물건들을 경매로 헐값에 넘기게 된다. 그런데 창고 경매의 특징은 물건별로 매매하는 것이 아니라, 보관 Unit 단위로 한다는 것이다. 즉, 경매에 참여한 사람은 창고 한 Unit에 보관된 물건을 통째로 사는 것이다. 그래서, 보관물 중 맘에 드는 것만 골라 사거나 하는 것은 당연히 허용이 안된다. 경매 참여 시에는 보통 물건을 만져보거나 할 수는 없고, 대충 겉으로만 보거나, 무슨 물건인지 정도만 알고 경매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말 그대로 보물찾기 같은 게임이다. 운이 좋으면 좋은 물건을 헐값에 건질 수도 있고, 아니면 거의 바로 쓰레기통에 갈만한 소용없는 물건을 뽑을 수도 있다.

<필자 사진> 맨하탄 소호(SOHO) 지역에 있는 Storage 간판

 
그런데 이 창고 경매에서 대박을 내고 인생이 바뀐 사람이 있다. 바로 존 말루프(John Maloof)이다. 2007년 존 말루프는 시카고의 한 창고 옥션에서 400달러를 내고 창고 한 Unit을 낙찰받았다. 부동산 중개인이었지만, 역사나 건축에도 관심이 많았던 말루프는 시카고의 한 지역에 대한 책(책 제목: "Portage Park")을 쓰고 있었는데, 마침 책에 쓸 사진을 찾던 차에 창고 옥션에서 1960년대 시카고 사진이라고 적힌 박스를 발견하고, 혹시 건질만한 사진이 있을까 하고, 경매에 참여한 것이다. 그러나, 막상 필름 네거티브를 보니 책에 쓸만한 사진이 없어 실망하고, 한동안 잊고 있었다. 
 

존 말루프(John Maloof)가 공저한 책인 "Portage Park"가 지금도 아마존에서 판매 중이다.

 
그런데, 갑자기 뭐가 씌었는지 Maloof는 2년동안 잊고 지내던 필름 네거티브를 들춰내서 스캔해 컴퓨터로 옮기는 작업을 진행했다. 네거티브에서 그럴듯한 거리 사진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이 사진들이 뭔가 가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직감한 Maloof는 사진 공부도 하고, 직접 다락방에 암실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곧 그 사진의 주인인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에 빠지게 된다.
 
Maloof가 처음으로 인터넷에서 비비안 마이어를 서치했을 때 짤막한 부고 빼고 아무런 기록도 찾을 수 없었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비비안 마이어는 Maloof가 그녀를 찾아 나서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2009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니, Maloof가 창고 경매에서 비비안 마이어의 물건들을 낙찰받았을 때도 그녀는 사실 살아있는 시점이었다.
 
사실 비비안 마이어의 생업은 시카고를 거점으로 이집 저 집 다니면서 아이들을 돌보는 유모(nanny)였는데, 그는 비비안 마이어가 유모로 일했던 가정들을 수소문해서 직접 찾아다니며, 비비안 마이어에 대한 단서를 찾아나간다. 결국 그의 삶 전체가 비비안 마이어가 되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사진 작품을 보존하고, 홍보하면서 책도 쓰고, 급기야 비비안 마이어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까지 만들면서 영화감독으로도 데뷔하고, 실제 그 영화에도 출연한다. 
 
비비안 마이어 다큐멘터리에 대해서 좀 알아보면 말루프는 마이클 무어(Michael Moore) 감독의 미국의 총기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Bowing for Columbine"(2002)에서 작업한 바 있는 찰리 시스켈(Charlie Siskel)과 공동감독으로 "Finding Vivian Maier"라는 타이틀로 다큐멘터리 제작했으며, 2013년 9월 토론토 국제 영화축제(Toronto International Film Festival)에서 개봉 이후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고, 여러 수상을 했을 뿐만 아니라, 87회 아카데미 수상식에서는 최우수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에까지 오르기도 했다. 심지어 로튼토마토(Rotten Tomatoes)에서도 95%라는 매우 높은 점수를 받았다. 결국 이제 세상에도 없는 비비안 마이어가 다 큰 성인으로 부동산 중개인이었던 말루프를 비비안 마이어 연구가로, 저술가로, 또 영화감독으로 그의 삶과 진로를 송두리째 바꿔버린 것이다. 어디까지나 좋은 의미에서 그렇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에 열광했다. 그런 열광은 말루프가 Flickr라는 이미지 공유 사이트에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몇 장 올린 것으로 시작되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듣지도 보지도 못한 미상의 사진작가의 재능과 엄청난 산출물에 경이를 표하면서 마이어는 순식간에 인터넷의 현상이 되어버렸다.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 같은 검증된 예술가에 관심을 보일만한 대형 언론사의 비평가인 마이클 키멜먼( Michael Kimmelman)조차도 비비안 마이어를 미국의 위대한 20세기 중반 거리 사진작가라고 극찬했다. 그뿐만 아니라, 마이어는 Diane Arbus나 Henri Cartier-Bresson, 그리고 André Kertesz 같은 20세기 사진의 거장들에 비견될 정도로 인정받았다. 
 

<필자 사진>

 
"Unseen Work"라는 타이틀로 Fotografika New York에서 열린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 사진전을 둘러보면, 작가는 주직업이 남의 집에 거주하며 아이들을 돌보는 보모(nanny)이다 보니 사진도 주로 그녀의 주거지역과 생활권에거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거리사진들이 시카고, 뉴욕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일부 플로리다에서 찍은 사진들도 발견된다. 사진을 15만 장 이상 찍고도 인화하지 않은 채 필름으로 보관한 것이 미스터리 하고 놀랍다. 그러나, 비비안 마이어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글 기록으로는 거의 남긴 것이 없다. 엄청나게 많은 사진 기록만 남기고, 신문 수집광이었지만, 정작 자신의 이야기는 사진 외에는 하지 않은 것이다. 자신의 초상을 사진으로 여러 장 남겼다는 면에서는 사진으로 자신의 얘기를 한 것은 맞는 것 같다. 사진에 대한 정규교육도 받지 않았지만, 뛰어난 재능을 가진 것이 분명했고, 그녀도 자신의 재능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필자 사진> Fotografika New York에서 열린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의 사진전 "Unseen Work"에는 작가가 직접 사용한 Rolleiflex 카메라도 전시되었다.

 
비비안 마이어의 언어는 사진이었던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는 "말로 할 수 있다면, 그림을 그릴 이유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비비안 마이어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If you could say it in words, there'd be no reason to photograph."
(말로 할 수 있다면, 사진을 찍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필자 사진> 뉴욕주 Nyack에 있는 에드워드 호퍼 생가를 뮤지엄으로 만든 Edward Hopper House Museum & Study Center 벽에 있는 에드워드 호퍼 인용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