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품팔아 직접 찾아간 미국의 인물, 건물, 그리고 사물 이야기

13. 신선한 커피와 음식이 자판기에서: 오토맷(Automat)

ktiffany 2025. 1. 19. 07:03

미국의 대표적 화가인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1882 - 1967)는 미국의 일상적 풍경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다만, 그의 그림은 항상 고독과 관조, 정적이 묻어난다. 화려한 색감의 재료인 유화(Oil)로 그리지만, 마치 템페라(Tempera)로 그린 듯한 가라앉은 느낌의 그림을 그린 화가이다. 음악으로 치자면 장조(Major)가 아닌 단조(Minor)의 음악색이다. 그런 그가 그린 그림 중에 "Automat (오토맷)"이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다. 이미 말한 것처럼 에드워드 호퍼는 미국의 흔한 일상적 풍경을 그렸다고 했다. 그러면, Automat은 미국 일상의 흔한 풍경이었을 것이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The Des Moines Art Center (아이오와) 홈페이지> Automat (Edward Hopper 1927), 캔버스에 유화

 
실제 그랬다. Automat (오토맷)은 미국에 맥도널드나 버거킹이 있기 전 대히트를 친 푸드체인이다. 다만, 지금의 맥도날드 처럼 전미에 걸친 전국구 푸드체인이 아니라, 필라델피아와 뉴욕시만 진출한 지역구 푸드체인이다. 그런데, 그렇게 잘 나가는 푸드체인점이지만, 뉴욕에 관광 다녀온 사람 중에 오토맷(Automat)에서 뭐 먹고 왔다는 사람은 못 만나 봤을 것이다. 지구에서 멸종된 공룡처럼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유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정정하자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뉴욕 맨하탄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맨하탄 8번가(8th Avenue)와 38번가(38th Street)가 교차하는 곳에 있는 오래된 적색 벽돌 빌딩 벽면에 Automat 광고가 아직도 화석처럼 남아 있다. 별도로 보존하지 않은 것 치고는 족히 40년, 50년을 외부에 그대로 노출된 상태에서도  모든 글씨를 인식할 수 있을 만큼 잘 버텨내고 있다. 
 

"HORN & HARDART 
AUTOMAT CAFETERIA 
ON BROADWAY CORNER IN THIS BUILDING"

<필자 사진> 맨하탄 8번가(8th Avenue)와 38번가(38th Street) 사이에 위치한 빌딩 옆 벽면에 남아있는 오토맷(Automat) 광고

 
오토맷은 Joe Horn과 Frank Hardhart가 손잡고 만든 자동판매기 음식 체인이다. 특히 Joe Horn은 커피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었고, Frank Hardhart는 주로 경영적인 측면을 맡았다. 실제로도 Automat에서 가장 유명한 아이템이 커피와 파이였다고 한다. 특히 커피는 20분마다 새로 끓인 커피만을 제공했으며, 남은 커피는 모두 버릴 정도로 커피 맛을 위해 높은 퀄리티 기준을 유지했을 정도로 커피에 진심이었다.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그림 "Automat"에 등장하는 여인도 다른 음식이 아니라 고독하게 커피를 음미하고 있다. 그림에서도 자판기 커피이지만, 컵과 컵받침까지 있는 제대로 된 차이나(china)에 담겨서 나온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오토맷이 자동판매기 음식체인으로 히트를 친 것은 맞지만, 두 창업자인 Horn과 Hardart가 처음으로 음식 자동판매기를 고안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독일 베를린에서 이런 자동판매기 음식판매 모델을 처음 보고 이것을 수입한 것이었다. 유럽에 비하면 엄청난 신생국가인 미국은 실제로 유럽에 대한 동경이 있었으며, 유럽의 개념들을 많이 모방하고 발전시킨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두 공동참업자인 혼과 하다트는 1902년 필라델피아서 첫 오토맷(Automat)을 선보이며, 미국의 패스트푸드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10년 후인 1912년에는 드디어 뉴욕 맨하탄까지 성공적으로 진출하게 된다. 
 
음식을 서빙하는 직원이 없이 고객들은 자동판매기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음식 메뉴를 보고 골라 자판기 슬롯에 5센트짜리 동전(Nickel)을 넣고,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면 신선한 음식을 꺼내 먹을 수 있었다. 100년 전 사람들은 이런 무인 자판기를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손님들은 이런 최첨단 자동판매기에 음식을 채우는 것은 로봇이 하는 것이 아닐까 착각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는 자동판매기 뒤에 있는 살아있는 직원들이 비워진 자판기를 음식으로 채우느라 바빴다. 

<워싱턴 D.C. Smithsonian's National Museum of American History 홈페이지> 오토맷(Automat) 자판기

 
오토맷은 5센트 동전(니켈, Nickel)만 있으면 신선하고 맛좋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저렴한 패스트푸드 식당이었지만, 요즘의 맥도날드와는 다른 내부 인테리어는 아르데코(Art Deco) 양식으로 매우 세련되고 고급 감 있는 디자인을 자랑했다. 음식도 1회용 용기가 아니라, 제대로 된 식기에 갖추어져 나왔다. 그리고, 음식이 빠르게 나온다는 면에서는 패스트푸드라는 명칭이 맞지만, 사실 맥도날드의 감자튀김 같은 것과는 다르게 음식은 신선한 재료로 만들어지고, 회전이 빨라 오래 묵혀두는 음식이 없었다. 

<워싱턴 D.C. Smithsonian's National Museum of American History 홈페이지> 오토맷(Automat) 인테리어

 
오토맷은 민주적인 식당이었다. 누구나 5센트 동전 몇개만 있으면 차별받지 않고, 커피와 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인종차별이 심한 시대였지만, 오토맷에 들어선 손님들은 누구나 평등했다. 흑인이든 여성이든 아이든 노인이든 상관없었다. 별도로 서빙하는 직원이 없으니, 팁 걱정도 없고 직원이 손님을 차별할 틈도 없었다. 자판기 앞에 선 손님들은 누구나 똑같은 손님이었다. 
 
미국의 금주령(Prohibition)으로 술을 파는 살롱들이 문을 닫으면서, 살롱들이 술 매출을 올리기 위해 제공하던 공짜 점심이 사라지고, 게다가 갑자기 닥친 대공황(Great Depression)으로 주머니가 더욱더 쪼그라든 평범한 미국 시민들에게 5센트의 행복을 제공하는 오토맷은 정말 고마운 존재였을 것이다. 전성기의 오토맷은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큰 레스토랑 체인으로 뉴욕시와 필라델피아의 80개가 넘는 지점에서 매일 수십만 명의 배를 채워주고 있었다. 이런 인기로 인해 Horn & Hardart는 미국 라디오 프로그램을 후원할 정도로 전성기를 누렸다. Horn & Hardhart는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NBC에서 방송된 "The Horn & Hardart Children's Hour"라는 가족 친화적인 프로그램의 후원사였다. 이 프로그램에는 그 유명한 "My Way"의 주인공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도 장기 출연하는 인기 프로그램이었다. 물론 이 프로그램 전에도 프랭크 시나트라가 인지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 프로그램을 통해 프랭크 시나트라는 더욱 인기를 얻고, Bobby Soxer 라 불리는 젊은 여성팬들을 몰고 다니는 대스타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런 오토맷에도 시대가 변하면서 결국 쇠락은 오고 만다. 인플레이션으로 5센트 커피를 유지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이 자판기 시스템의 문제는 5센트 동전 밖에는 받지 못하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Horn & Hardart는 오토맷에서 5센트 커피가 고객들에게 상징하는 바가 얼마나 큰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커피를 팔수록 손실이 나면서도 이를 감내했지만, 결국 커피 원두와 식재료가 오르는 가운데 이는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이 아니었다. 그런데, 자판기는 5센트 동전만을 인식했기 때문에 커피 가격은 5센트에서 10센트로 한 번에 100%나 오를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원가 절감을 위해 서서히 음식의 질도 저하되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입맛과 외식문화도 달라졌다. 결국 Horn & Hardart는 뉴욕시에 있던 지점들을 버거킹 같은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로 변경하고, 마지막으로 남은 3번가(3rd Avenue)와 42번가(42nd Street)가 1991년 문을 닫으면서 오토맷의 시대는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생각해 보면 Horn & Hardart는 대단한 기업이었다. 1902년에 필라델피아에 첫 Automat을 선보인 이후 1991년까지 생존했으니 거의 90년을 기업으로서 살아남았던 것이다. 요즘 미국에서 상장된 기업들 중에 제일 잘 나가는 기업들은 어디인가? 테슬라(Tesla), 아마존(Amazon), 구글(Google), 페이스북(Meta), 엔비디아(Nvidia) 같은 회사들이 먼저 떠오른다.  이들 기업의 나이가 얼마나 될까? 이들 기업 중에서 구글이 그래도 오래된 편이니 평균 나이가 20년이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 같은 발전 속도를 보면 구글이 90년을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일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테슬라가 100년을 갈지도 잘 모르겠다. 스타벅스는 1971년 시애틀의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1호점부터 쳐도 이제 반세기를 넘긴 그래도 오래된 기업이다. 그런 스타벅스도 매출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위기설이 나오고 있다. 그러니 이런 사례만 보더라도 기업으로 90년을 살아남는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서 맨하탄 8번가(8th Avenue)와 38번가(38th Street) 사이에 위치한 빌딩 옆 벽면에 희미하게 남아 한때 존재했다는 것을 호소하고 있는 죽은 기업의 광고를 한번 더 쳐다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