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대리운전"을 영어로?

ktiffany 2025. 2. 18. 07:08

▶ designated driver

 

"대리 운전"을 영어로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는 경우 두 가지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다. 우선 "대리"를 어떻게 영어로 옮기면 될까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용어의 의미에 충실한 방법과 영어권에서 우리나라의 대리운전과 비슷한 서비스가 있는지 찾아서 그런 서비스를 영어로 뭐라고 칭하는지 알아보는 사회적 관점이다.

음주운전이 문제가 되지 않는 나라는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자동차와 술은 모두 중요한 일상의 일부이다 보니, 운전과 술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상황도 다반사인 것이고, 이런 문제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일 수는 없다. 미국에서도 음주운전은 중요한 사회 문제로 인식된다. 그래서 1980년대부터 음주운전 방지 캠페인의 일환으로 "Designated Driver"라는 컨셉에 대해서 대대적인 홍보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회식문화와는 좀 다른 파티문화를 즐기는 미국인들이다 보니 여러 명이 술을 같이 먹는 자리가 생기면 그 일행 중 한 사람을 운전자로 지정해서 술을 마시지 않고, 나중에 일행을 모두 집에 운전해서 데려다주도록 지정한 사람을 "designated driver"라고 한다. 영어 동사 "designate"가 "지정하다"라는 의미가 있으니 결국 "designated driver"는 술 마시지 않고 운전하도록 "지정된 운전자"를 말한다.

요즘에는 미국에서도 우리나라의 "대린운전"과 비슷한 유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dryver.com"과 같은 회사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대리운전"과는 좀 차이가 있다. 지역마다 편차야 있겠지만, 미국의 대중교통 시스템이 한국과 같지 않다보니 대리 기사가 차 주인의 차로 집까지 운전 서비스를 제공하고 나서 돌아올 교통편이 마땅치 않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미국의 대리 운전 서비스는 2인 1조 시스템을 쓰게 된다. 한 명은 차 주인의 차를 운전하고,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의 차로 목적지까지 따라가서 대리기사를 다시 태우고 돌아오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을 둘이나 쓰고 차까지 한 대 붙어야 하니 서비스 비용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비싸질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상상이 될 것이다. 어쨌든 이런 서비스를 미국에서도 "designated driver service"라고 흔히 칭하니 우리나라의 "대리운전"도 이렇게 부르면 미국인들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을 듯 하다. "술 마셨을 때 대신 운전해주는 사람"이라는 핵심 개념이 공통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뉴욕타임즈(NYT)의  "Drinkers in Korea Dial for Designated Drivers"라는 제하의 기사에서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대리 운전기사"를 표현하기 위해 "replacement driver"라고 쓰고 있다. "대리"라는 의미에 충실하기 위해 "replacement"라는 단어를 찾은 것이다. 사실 "replacement"라는 단어에는 "대리"라기 보다는 "대신"이라는 어감에 충실하다. 아마 그 기사를 쓴 기자는 음주운전자 "대신" 운전한다는 의미에서 "replacement"가 영어적으로 의미 전달에 더 적합한 것으로 본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리"라는 말을 정말 여러 상황에서 쓰고 있다. "대리인", "대리 운전", "대리 만족", 심지어 "대리모"라는 말도 있다. 그럼 "대리"라는 우리말 단어를 가장 잘 전달하는 영어 단어는 무엇일까? 앞서 NYT 기자는 "대리 운전"에서 "대리"를 대신하는 영어 단어로 "replacement"를 썼는데, 이 단어가 과연 여러 상황에서 쓰이는 "대리"를 대신할 수 있는 만능 단어일까? 그렇지 않다.

영어에서 "대리인"이라고 할 때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단어는 "agent"이다. 이 단어는 법률적 의미가 가장 강하다. 본인으로 부터 정당한 대리권을 부여받은 대리인은 권한을 받은 범위 내에서 한 대리 행위가 곧 본인이 한 행위로 귀속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리인이 집을 팔았을 때 정당한 대리권을 받은 것이라면 본인이 나중에 자신의 행위가 아니라고 집의 매매를 취소할 수 없다. 남이 한 행동이지만 자신의 책임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남이 어떻게 100% 자신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겠는가? 대리인은 늘 대리권을 준 주인의 뜻을 대변하는 듯 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싶은 유혹을 피하기 어렵다. 이렇게 대리인과 주인 사이의 이해 상충 문제는 경제학에서도 그것만으로 논문감이고 실제로 노벨 경제학상이 이 분야에서 나오기도 했다. 이런 대리인과 주인의 문제를 영어로는 "agency problem"이라고 한다. "agency problem"의 대표적인 예가 주식회사의 월급쟁이 CEO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전문 경영인"이라고도 하는 이들은 회사의 주주들의 이익을 대변하도록 고용된 사람들이지만, 주주의 눈을 피해 회사 자원을 개인의 이익을 위해 쓰고 싶은 유혹을 받기 마련이다. 주주들은 이런 월급쟁이 CEO들이 주주들과 같은 인센티브를 가질 수 있도록 스톡옵션(Stock option) 등 성과와 연동된 보상 방안을 쓰기도 하지만, agency problem을 해결할 완벽한 방법은 나오지 못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문제되고 있는 CEO들의 채용비리도 사실 넓게 보면 agency problem"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국민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단어를 유독 많이 쓰는 정치인들을 의심해 봐야 하듯이 유독 "주주 이익의 극대화"를 외치는 월급쟁이 CEO들도 의심해 봐야 한다. 사람은 마음 한 구석 찔리는 곳이 있을 때 그런 구린 마음을 들킬까봐 유난히 속과 다른 소리를 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럼 "대리 만족"은 영어로 어떻게 말해야 할까? "대리 만족"은 결국 자신이 직접 이루거나 경험할 수 없는 것을 다른 사람이나 수단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인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부모가 자신의 분신과 같이 여기는자식을 통해 얻는 간접적 만족이다. 예를 들어, 부모가 당신은 못 배웠지만, 자식은 명문대를 보내 대리만족을 얻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때 "대리"에 가장 적합한 영어 단어는 "vicarious"이다. 좀 어려운 단어이고, 사실 미국인들이 그렇게 자주 쓰는 단어도 아니다. 개인주의가 강한 미국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자식을 자신과 동일시 하는 경향이 훨씬 덜 하다 보니 자식을 통해 부모의 꿈을 이룬다는 "대리 만족"의 개념도 희박할 수 밖에 없다. 아무튼 "대리 만족"이라고 하면 "vicarious satisfaction"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미국인들이 이 단어를 듣고 100% 공감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말자. 보통 "대리 만족"을 표현할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미국인들은 "live vicariously through"라는 쓸 가능성이 높다. "~를 통해 간접적인 삶을 살다"라는 의미로 결국 "~를 통해 대리 만족을 얻으며 살다"라는 뜻으로 풀이 된다.

 

마지막으로 "대리모"는 영어로 뭐라고 하면 될까? 요즘은 의술의 발달로 임신을 할 수 없는 어머니를 대신해 다른 사람의 몸만을 빌려 아이를 낳는 방법 즉, 유전자는 원래 부모의 것을 유지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옛날에 우리나라에도 대리모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아내 대신 다른 여자를 통해 아이를 낳는 것, 즉 의도된 어머니의 유전자를 전할 수 없는 반쪽자리 대리모 방식인 "씨받이"라는 것이 있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씨받이"에는 한 때 우리나라 영화계의 대스타 강수연이 "씨받이" 역할을 맡아서 큰 호평을 받았는데, 이 영화만 보더라도 "대리모"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볼 수 있다. 이처럼 윤리적, 사회적 이슈가 따라다니는 "대리모"는 영어로 "surrogate mother"라고 한다. "surrogate"은 내가 할 일을 대신 해주는 다른 사람이나 사물"을 뜻하는 것으로 내가 할 수 없는 임신을 대신 해주니 "surrogate mother"가 "대리모"가 된다.

이처럼 "대리인", "대리운전", "대리 만족", "대리모"까지 널리 쓰는 "대리"라는 단어를 대체할 수 있는 하나의 영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각각의 상황에서 영어는 "agent" 부터 "replacement/designated", "vicarious", "surrogate"까지 평소에 우리에게 생소한 영어 단어들을 우리말의 "대리"라는 의미로 쓰고 있다. "대리"라는 단어만 놓고 보면 미국인들이 훨씬 복잡하고 어렵게 언어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 "designated driver" 사용 예시
When booking a designated driver service, it helps to do some homework.
대리 운전 서비스를 예약할 때, 공부 좀 미리 하는 게 도움이 된다.
* do some homework: 미리 알아보다, 사전 조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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