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도 비싸고, 모든 것에 수수료와 팁을 붙이는 뉴욕에서 아마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정말 손에 꼽을 만한 공짜 아이템이 있다면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나 그것이 뉴욕 발레(NYC Ballet)든 메트(Met)의 오페라든 뉴욕필하모닉(Nyphil) 심포니 연주든 링컨센터 공연뉴욕 링컨센터(Lincoln Center)에 공연을 보러 가면 관객들이 받게 되는 Playbill 프로그램이다. 브로드웨이와 더불어 런던도 웨스트엔드(West End) 뮤지컬이 유명하지만, 웨스트엔드 뮤지컬에는 Playbill이 없다. 공연 프로그램은 따로 사야 하는 유료 아이템인 것이다.
Playbill이 그날의 공연에 대한 프로그램을 담은 프로그램이다 보니 관객들은 극장 좌석에 앉아서 무대를 배경으로 Playbill 프로그램 책자를 들고 인증샷들도 많이 찍는다. 당연히 관객들이 이런 Playbill을 공짜로 받을 수 있는 것은 Playbill의 광고 스폰서가 큰 몫을 차지한다. 그런 광고 스폰서들 중에서도 특히 링컨센터 공연 Playbill 책자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광고 스폰서가 하니 있으니 그건 바로 Tavern on the Green이라는 센트럴파크에 있는 유명 레스토랑이다. 실내와 야외 좌석을 모두 갖춘 이 레스토랑은 실내도 아름답지만, 늦은 봄이나 초여름 해가 넘어가면서 점점 밝아지는 야외 조명 장식이 너무나 아름답고 로맨틱한 곳이다.

영화 "When Harry Met Sally... (1989)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중 세 여자들이 호수를 배경으로 한 레스토랑의 야외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며 수다를 떠는 장면으로 유명한 센트럴파크의 또 다른 식당인 보트하우스(Boathouse)도 있지만, Tavern on the Green도 보트하우스 못지않게 멋진 레스토랑이다.

사실 이 두 레스토랑은 센트럴파크에 있는 식당 중 멋진 식당이 아니라, 뉴욕에서도 손꼽을 만한 멋진 센트럴파크 레스토랑이다. Tavern on the Green은 링컨센터의 Playbill 책자에서도 가장 비싼 페이지 중 하나일 것 같은 공연 프로그램 소개 직전 페이지에 광고를 광고를 낸다. 링컨센터가 Tavern on the Green과 도보로 10분 밖에 안 걸리는 거리에 있기 때문에 동네 상권 광고라는 점에서 링컨센터 Playbill 광고를 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홍보 수단으로 보인다. 다만, 링컨센터 공연들이 대부분 오후 9시가 넘는 시간에 끝나는데 Tavern on the Green 영업시간도 요일에 따라 다르지만 오후 9시에서 10시 사이에 끝나기 때문에 링컨 센터 광고가 당일 관객들을 타깃으로 한 홍보는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식당을 두 개나 품고 있는 센트럴파크에서 전투, 더 정확하게는 투쟁이 벌어진 적이 있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는가? 거기다가 그 투쟁이 이 두 식당 중 하나와 관련되어 있다면 더욱더 의아해질 것이다.

Tavern on the Green 레스토랑 바로 옆에는 센트럴파크 내에 있는 놀이터라는 것 말고는 여느 동네 놀이터와 하나도 다를 게 없는 Tarr-Coyne Tots 놀이터가 있다. 사실 이 놀이터는 센트럴파크가 만들어질 때 원래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나중에 만들어진 곳이다. 1956년 4월 그 당시 뉴욕시 공원관리 커미셔너(Commissioner, 공원관리 수장)이었던 로버트 모세스(Robert Moses)는 지금 놀이터가 있는 자리에 Tavern on the Green 레스토랑 주차장을 만들 계획을 추진한다.
주차장으로 낙점한 자리는 잔디와 나무가 우거져서 맨해튼의 어퍼 웨스트 사이드(Upper West Side) 동네 엄마들과 보모, 아이들이 주로 와서 놀던 곳이었다. 로버트 모세스가 계획을 밀어붙이기로 결정하고, 주민들에게 사전 통지도 없이 현장에 불도저를 동원했다. 다행히 성난 몇몇 주민들이 때마침 불도저가 있는 현장에 집결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일례로 뉴욕타임즈 기자는 "이 땅이 다른 곳이었다면 호들갑 떨 일도 아니다. 하지만, 센트럴파크는 다르다. 뉴요커(New Yorker)들, 특히 센트럴파크 근처에 사는 뉴요커들에게는 센트럴파크는 성지이다. 센트럴파크를 공원 외의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국기를 모독하는 것과 같다."라고 썼다.
결국 공사가 시작되기는 했지만,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 주민들의 반대와 이어지는 소송으로 주차장 프로젝트는 무산되고, 로버트 모세스는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이미 현장이 훼손된 상태였기 때문에 공원 관리부는 주차장 자리에 놀이터를 지어주었다. 이 사례는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던 로버트 모세스의 공공 프로젝트를 시민의 저항으로 무산시킨 보기 드문 사건으로 세간에 "Battle of Central Park (센트럴파크 전투/투쟁)"으로 알려졌다.

로버트 모세스(1888 ~ 1981)는 20세기 뉴욕시에 있어서 막강한 도시 계획가이자 고위 공무원이었다. 예일 대학교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학사를 받고,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엄친아 엘리트였던 배경은 그가 권력층에 줄을 대는데 틀림없이 한몫했다. 1920년대 뉴욕 정치에 입문한 그는 개혁 성향의 주지사였던 알 스미스(Al Smith) 밑에서 일했다. 처음에 모세스는 이런저런 명분으로 도시 공공의 공간을 개선하는 것에 중점을 두면서 영향력을 넓혀갔다. 그리고, 1930년대에는 뉴욕시 공원 부서의 수장(Parks Commissioner)이 되어 일에 대한 추진력과 주요 공원과 도로를 만드는 야심 찬 계획으로 명성을 쌓았다.
그 후로도 모세스는 한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Long Island State Park Commission이나 Triborough Bridge and Tunnel Authority, Port Authority of New York and New Jersey 같은 여러 공공기관의 요직을 꾀차게 된다. 이런 자리를 통해 그는 엄청난 공공 자금과 교량, 도로, 터널 같은 중요한 대중교통 관련 프로젝트를 자신의 통제권에 쥐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모세스의 전략은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는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수완 좋게 선출직 공무원들을 배제시키면서 정치 기관의 간섭을 받지 않고, 본인 입맛대로 일을 추진할 수 있었다.
로버트 모세스가 애초에는 뉴욕시의 노동계급의 삶을 향상해 보겠다는 다짐으로 공원을 만들고, 다리를 짓고, 사람과 장소를 연결해 주는 고속도로를 닦았겠지만, 나중에는 그의 프로젝트에 방해가 되는 약자 계층들, 특히 유색인종과 흑인들의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달걀을 깨야만 오믈렛을 만들 수 있다는 논리로 약자들을 오랜 삶의 터전에서 몰아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모세스는 "Slum Clearing Committee (슬럼 제거 위원회)"의 의장 자격으로 주민들의 저항과 시위에도 불구하고 "슬럼화"되었다고 생각되는 동네들을 가차 없이 레킹 볼(wrecking ball)로 무차별하게 부숴버리곤 했다. 오죽하면 David Hare의 각본으로 만든 로버트 모세스에 대한 연극의 제목이 "Straight Line Crazy"이다. 제목처럼 모세스는 도로를 반듯하게 내기 위해 방해가 되는 동네를 완전히 밀어버리는데도 인색하지 않았다.
결국 40년이라는 기간 동안 뉴욕시민들에게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누린 로버트 모세스도 1950년대부터 시들기 시작한다. 시민단체들이 그의 계획과 대중교통보다 차를 우선시하는 그의 노선에 조직적으로 반대하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도로를 내는데 그렇게 집착한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정착 본인이 닦은 도로에서 차를 운전하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1974년 Rober Caro가 쓴 로버트 모세스에 대한 전기책인 "The Power Broker"가 출간되면서 모세스의 명성에 결정타를 날렸다.

로버트 모세스는 1981년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좋든 싫든 그가 남긴 도시계획의 유산은 뉴욕 곧곧에 지금도 남아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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